미스터트롯 결승 6위 장민호의 모든것 , 장민호 나이 아이돌 유비스 고향 트로트계의 BTS가 되기까지

>

트로트계의 BTS , 어머님들의 아이돌 22년차 가수 장민호 씨가 ‘미스터트롯’에 출전해 신사다운 매너와 관록있는 실력으로 결승무대까지 올라 화제가 되었는데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트로트 가수 장민호의 살아온 인생 , 아이돌에서 트로트가수로 전향 계기 , 미스터트롯 참가 계기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장민호 성장기 (고향 , 학교 , 아이돌 데뷔)

>

가수 장민호의 본명은 ‘장호근’으로 1977년 9월 11일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로 44세가 되었고 아직 미혼이라고 합니다.

장민호는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외모로 일찌감치 연예인을 준비했는데요. 중 고등학교 시절 연기 학원을 다니면서 실력을 키운 그는 롯데 브레인껌 , 나우누리 , 타워레코드 , 농심 쌀로별 등 다수의 CF에서 모델로 활동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학업에도 충실해서 단국대학교 학사에 단국대학교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 석사까지 마치고 졸업을 했죠.​1세대 아이돌 유비스 데뷔 그러나..

>

노래에도 소질이 있어 가수를 꿈꾸던 장민호는 1996년 연습생으로 시작하여 1997년 남성 아이돌 4인조 그룹 유비스로 데뷔했는데요. 장민호가 20살이 되던 해 지인의 추천으로 4인조 유비스라는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유비스는 파워풀한 댄스곡을 부르는 그룹으로 장민호는 출중한 실력으로 메인보컬을 맡았는데요.’별의 전설’이라는 곡이 히트를 하며 인기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쟁 아이돌인 H.O.T, 젝스키스의 인기는 엄청났고 그 후발주자인 유비스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속사의 구타 , 유비스 해체

>

하지만 2집 발표 후 돌연 소속사 문제가 불거지며 팀이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2012년 ‘내 생에 마지막 오디션’ 에 출연하여 그룹 유비스 때를 이야기를 밝혀 팬들을 충격에 빠트렸는데요. 소속사에서 구타가 심했다고 합니다.

“구둣발로 정강이를 차이기도 했다.

더 이상은 가수를 할 수가 없었고 활동 당시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때문에 해체 당시 아쉬움보다는 해방감이 컸다고 합니다.

장민호의 휴식기그룹이 해체되면서 장민호는 대학교 학업에 매진했고 생활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당시 장민호가 아르바이트를 한 직종은 수영 강사였다고 하는데요. 탄탄한 몸매와 외모로 아줌마 회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2년 넘게 수영강사를 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가수 도전

>

가수의 꿈을 버릴 수 없던 장민호는 지인의 추천으로 2004년 ‘바람’이라는 남성 듀오 활동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해체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는 본인의 자의로 노력해서 활동했음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 좌절감이 매우 컸다고 합니다.

​그렇게 2007년에 군 입대를 하고 2009년 전역 후 장민호의 나이 서른이 됩니다.

​다시 찾아온 기회 – 트로트 가수로 데뷔

>

본격적인 진로를 고민해야 되는 시점. 장민호는 중국어에도 소질이 있어 잠시 가수를 포기하고 외국항공사 스튜어드 시험을 준비했지만 꿈을 포기할 수 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던 중, 트로트의 세계에 빠지게 됩니다.

​참고로 유비스 시절에도 노래를 트로트처럼 부른다고 많이 혼났다고 하는데요. 트로트계 ‘BTS’는 역시 트로트 ‘DNA’가 내재되어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장민호는 음악이 너무 좋았으며 이제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민 없이 트로트에 도전을 했는데요. 그렇게 2011년 ‘사랑해 누나’ 싱글 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또한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면서 KBS 2TV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에 참가하여 가수 렌과 한 팀으로 최종 우승까지 거머쥐게 됩니다.

그렇게 인지도를 쌓던 장민호는 2013년 5월 16일 ‘남자는 말합니다’ 앨범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앨범으로 활동하며 ‘어무이­들의 대통령'(엄통령) 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노력이 트롯계의 BTS를 만들다

>

장민호의 인기를 외모 덕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사실 장민호는 엄청난 노력으로 ‘트로트계의 BTS’ 호칭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방의 10명 남짓의 작은 노래교실도 쉴 새 없이 찾아 자신의 노래를 알렸고 팬들에 자주 얼굴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민호는 데뷔 18년 만인 2015년에 트로트로 두 번이나 신인상을 받는 등 노력의 결실을 서서히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미스터트롯에 도전한 22년차 가수 장민호

>

장민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미스터트롯에 현역부로 출전하여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는데요. 결승무대를 끝마칠때까지 신사다운 매너와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 유머러스함 까지 곁들이며 ‘자상한 아부지­’로 착각하는 분들이 늘어날 정도였습니다.

특히 정동원 군과의 ‘아부지­­와 아들’ 캐미가 돋보였었죠. 장민호는 아직 솔로라고 합니다.

​결승전 2라운드 ‘인생곡 미션’에서 조항조의 ‘남자라는 이유로’를 열창할때는 마스터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장민호 만의 짙은 감성이 느껴지는 무대에 조영수는 첫 소절을 듣고 감탄했고, 장민호는 2라운드 최고 점수로 98점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돌아가신 장민호의 아부지­가 생전에 자신이 트로트가수로 데뷔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것이 항상 가슴에 남아 진심을 담았던 노래인데요. 그래서인지 심사위원과 팬들을 모두 감동시켰던거 같습니다.

​결승 무대에서는 최종 6위에 올라 ‘진,선,미’에는 들지 못했지만 제2의전성기라고 할만큼 큰 인기를 얻었으니 이제 앞으로는 트로트 가수 장민호의 앞날에 ‘꽃길’만 가득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