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4)1960년대 유유산업 안양공장에서 의약품 생산


사진은 1960년대 유유산업(주) 안양공장의 마약 생산 현장. 지금의 안양박물관(구 김중업박물관)에 있던 유유제약.
(주)유유 1941년 유한무역주식회사로 창립 설립. 1950년대 중반 한국전쟁 이후 안양수영장(안양유원지-안양예술공원) 입구에 있는 포도밭 등 벌거벗은 땅을 매입해 1959년 5월 안양공장을 준공했다.

제약회사였습니다.

유유산업의 창업자는 유득한이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충업(1922-1988)에게 건축을 의뢰한 결과 그곳에 있던 1950년대를 대표하는 산업용 건물이 탄생했다.

특히 사옥의 지붕은 역보로, 생산동은 캔틸레버보로 시공하여 삼성천의 조망권을 확보하도록 설계하였다.

층수가 추가된 건축학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며, 공장 입구 2층에 있는 원형 관리인의 방도 독특한 형태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공장동 2층 양쪽에는 각각 개척자상과 모자상,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조각가 박종배의 작품, 모양.
이처럼 유유안양공장은 서양에서 근대건축양식이 등장하던 시기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래로 건축적 중요성이 매우 큰 건축물로 2003년 안양시 건축문화제에서 아름다운 건축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건축상을 수상했습니다.

유유안양공장터는 중초사(통일신라)와 안양사(고려)가 있던 사찰부지였다.

2007년 유유가 제천으로 이전을 추진하자 안양시가 유유공장을 매입했고, 장례문화제 발굴에서는 문학에서만 존재하던 안양사 명문 기와가 발굴되었고, 고려 태조 왕건이 세운 칠층전탑의 진상이 밝혀졌다.

중초사 – 통일신라의 사찰.
개조 후 2014년 3월 28일 김중업박물관으로 개관하였으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주민회관인 김중업회관과 안양역사관, 행사장, 공연장, 문화경비실 등을 갖추고 있다.

김중업박물관은 대지면적 16,243㎡, 연면적 4,596㎡로 2007년과 2011년에 6개동으로 개관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다.

김중업박물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안양사인데, 2009년에 준공된 중초사지 발굴 당시 안양이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안양사이다.

안양시가 공장부지를 매입한 뒤 추진한 복합문화공간 활용이 삭감된 사실이 드러났다.

통일신라시대 중초사터로만 알려진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제4호)가 새겨진 신라유물은 이곳이 유일하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될 뿐인 칠층전탑의 흔적이 발굴되었다.

불행히도 거대한 사원 단지의 발굴 현장은 다시 흙으로 뒤덮였습니다.

복합문화공간 활용 논의 과정에서 역사교육의 일환으로 칠층전탑에 유약을 칠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보존상의 어려움으로 무산됐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시민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고려되지 않아 아쉬운 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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